6장 1-7절

 6 1-7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제사의 다섯가지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속건제 대한 규례는 레위기 5 14-19절에서부터 7장까지 이어지는데, 특히 6장에서는 다섯가지의 제사의 방법을 다시 설명한다. 번제는 태워서 바치는 제사로서 하나님 자신의 희생을 나타낸다. 소제는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는 것이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나타내고, 속죄제는 죄사함을 통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나타낸다. 속건죄는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보여준다. 제사의 형식에 있어서는 속죄제와 같다.

 

2.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피카돈) 범죄하되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피카돈은 파카드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기본어근은 방문하다(호의적, 혹은 적대적인 의도에서)유추적으로 감독하다, 소집하다, 맡기다, 보살피다, 놓치다, 맡기다 등등이며, 피쿠드는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신실하지 못하다 라고 번역된 것은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그 계명 속에 있는 말씀의 의미를 마음에 간직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생각대로 그 의미를 변경하거나 축소시킨다.

여기에는 네가지가 등장한다.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 부인하거나』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에 대해서,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동족만 이웃이라고 생각했다.레위기 1918절에서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이처럼 구약성경에서 이웃은 철저하게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치는 단어였다. 당연히 이교도나 이방인은 이웃의 범주에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같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이웃의 범위가 확대 적용됐다. 레위기 1934절에서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웃에 대한 개념은 누가복음 1029-37절까지 예수님의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부터 완전히 달라진다. 물론 이웃의 범위 역시 동족은 물론 이방인, 이교도까지 확대된다. 이런 가르침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특정 대상이었던 이웃이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 됐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036-37절에서『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웃은 도움이 필요로 하는 자들이다. 이는 하나님과 분리된 자,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에게서 성도는 친구와 이웃과 같은 자이다. 하나님이 맡기고 전당잡힌 것을 돌려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영적으로 살아나는 열매맺는 일이다. 결국 하나님께 돌려주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는 것을 의미한다.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 부인하거나』죄의 근본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판단해서 변개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중에서 여덟번째, 도둑질하지 말라, 아홉번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열번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거짓 선지자들이 퍼뜨리는 비진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 진리의 양식을 먹어야 하는데, 먹지 못하도록 비진리를 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거짓 목사들이 이렇게 비진리로 설교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목사들이 사탄의 일꾼이 되어 그들의 생명 양식을 빼앗는다. 성경의 비진리를 선포하는 자는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는 자들이다. 탐심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게 우상 숭배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탐심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자기가 주인이 되고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의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레위기의 속건 제사를 생각하면서,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안으로 들어가라는 의미가 된다.

 

3.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마태복음 5 34절『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하늘보다 하나님의 보좌가 더 크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5 35절『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마찬가지로 땅보다 하나님의 발등상이, 예루살렘보다 큰 임금(하나님), 머리보다 그것을 자라게 하는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한다. 요컨대 어떤 맹세라도 모두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5 36-37절『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유대 랍비들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두 번 이상 같은 대답을 하면 맹세라고 간주했다. 맹세란 하나님께 자원하여 무엇을 드리려 서약하든지, 사람들 사이에 계약을 지키려는 보증이든지 간에, 모든 종류의 약속을 잘 지키겠다는 결의를 내비치는 행위이다. 계명이나, 서원이나, 약속이나, 계약이든 간에 진정성과 성실성을 갖고 대답을 했다면 맹세인 것이다. 예수님의 뜻은 말로든 물건이든 보증할 필요 없이 무슨 약속이든 성실히 지키기만 하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이 맹세에 대해 가르치는 근본 의미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꾸만 거창한 대상이나 물건을 동원해 맹세하는 것은 상대를 속이려는 잘못된 의도가 개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맹세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다. 그들은 금과 예물(성전에 바칠 헌물)을 걸고 맹세한 것은 꼭 지키되, 성전과 제단에다 대고 말로서 한 맹세는 꼭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금보다 성전이, 예물보다 제단이, 성전과 제단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했다. 모든 맹세는, 돈을 걸었든 말로만 서약했든, 결국 하나님께 행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맹세라도 최선을 다해 지켜야지 맹세 중에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레위기 5 4-6절에서『혹 누구든지 무심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니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범과를 인하여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양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구약의 맹세에 대한 가르침은 누가 봐도 합당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무지 하지 말라고 했으며, 심지어 악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맹세 자체를 무조건 금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위선적 형식적인 맹세를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에게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을 자기들 편리한 대로 악용하는 잘못된 습관을 당장 그만 두라는 뜻이었다.

마태복음 23 16-22절에서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맹세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다. 그들은 금과 예물(성전에 바칠 헌물)을 걸고 맹세한 것은 꼭 지키되, 성전과 제단에다 대고 말로서 한 맹세는 꼭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금보다 성전이, 예물보다 제단이, 성전과 제단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했다. 모든 맹세는, 돈을 걸었든 말로만 서약했든, 결국 하나님께 행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맹세라도 최선을 다해 지켜야지 맹세 중에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4-5.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훔친 것이나 착취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이나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오분의 일은 100분의 이십을 의미한다. 십과 십이다. 십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하며, 나머지 십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의미한다. 나를 드리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 죄의 근원이다. 죄에 대해서 죽는 자가 생명을 얻는 것이다. 로마서 66-7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6.그는 또 그 속건제물을 여호와께 가져갈지니 곧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고 갈 것이요

이사야 53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이 말씀 속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속건 제물로 드린다고 말씀하고 있다. 속건제는 히브리어로 아샴(אָשָׁם)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부끄러운 것, 수치스러운 것, 벌 등을 의미한다. 속죄제(하타아)가 죄를 드리는 것이라면, 속건제는 부끄러운 것을 드리는 것이다. 속죄제와 아주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속건제는 반드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위기 5 14절부터 6 7절에 의하면 속건제는 특별히 십일조나 헌물을 도적질하는 등 하나님의 성물에 대하여 범죄 하였거나, 다른 사람에게 범죄 하여 남의 물건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그 물건의 가치에 5분의 1, 20%를 더하여 배상을 한 후에 그 범과에 요구되는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로 드려 속죄하는 제사였다. 

이사야 53 10절『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씨는 약속을 의미하는 언약이 될 것이다. 영혼으로 번역된 네페쉬는 혼이다. 혼을 드린다는 것은 육체로부터 비롯된 혼은 죽고(십자가에서 예수와 연합하여 죽음), 하나님의 약속인 하늘로부터 오는 혼을 받게 될 것(부활)이라는 의미다.

 

7.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

속건제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 이웃에게도 부지중에 수없이 많은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따라서 모두가 함께 하나님께 죄인이 되는 것이다. 물리적 피해보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이 함께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가를 다시 한번 기억해야만 한다.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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