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6-11절
3장 6-11절
6.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제물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וְאִם־מִן־הַצֹּ֧אן קָרְבָּנֹ֛ו לְזֶ֥בַח שְׁלָמִ֖ים לַיהוָ֑ה זָכָר֙ אֹ֣ו נְקֵבָ֔ה תָּמִ֖ים יַקְרִיבֶֽנּוּ׃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릴 때 숫소를 태워드렸다. 죄인들의 생활 능력에 따라 양이나 염소, 비둘기도 바쳤다. 제물은 다 불태워졌다.『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불태워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멸하여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다.
7-8.만일 그의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אִם־כֶּ֥שֶׂב הֽוּא־מַקְרִ֖יב אֶת־קָרְבָּנֹ֑ו וְהִקְרִ֥יב אֹתֹ֖ו לִפְנֵ֥י יְהוָֽה׃
וְסָמַ֤ךְ אֶת־יָדֹו֙ עַל־רֹ֣אשׁ קָרְבָּנֹ֔ו וְשָׁחַ֣ט אֹתֹ֔ו לִפְנֵ֖י אֹ֣הֶל מֹועֵ֑ד וְ֠זָרְקוּ בְּנֵ֨י אַהֲרֹ֧ן אֶת־דָּמֹ֛ו עַל־הַמִּזְבֵּ֖חַ סָבִֽיב׃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했다. 머리에 안수를 한다는 것은 제물과 제물을 바친 자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동물을 잡아서 피를 뿌렸다. 죽은 동물의
피가 죄인의 죄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뿌림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은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되는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동물의 피흘림을 통해서 죄인의 피가 흘리는 것이며, 피가 뿌려짐은
죄인의 피가 뿌려지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날마다 회개가 아니라,『날마다 죽었노라』를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9-10.그는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골에서 벤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וְהִקְרִ֨יב מִזֶּ֣בַח הַשְּׁלָמִים֮ אִשֶּׁ֣ה לַיהוָה֒ חֶלְבֹּו֙ הָאַלְיָ֣ה תְמִימָ֔ה לְעֻמַּ֥ת הֶעָצֶ֖ה יְסִירֶ֑נָּה וְאֶת־הַחֵ֨לֶב֙ הַֽמְכַסֶּ֣ה אֶת־הַקֶּ֔רֶב וְאֵת֙ כָּל־הַחֵ֔לֶב אֲשֶׁ֖ר עַל־הַקֶּֽרֶב׃
וְאֵת֙ שְׁתֵּ֣י הַכְּלָיֹ֔ת וְאֶת־הַחֵ֨לֶב֙ אֲשֶׁ֣ר עֲלֵהֶ֔ן אֲשֶׁ֖ר עַל־הַכְּסָלִ֑ים וְאֶת־הַיֹּתֶ֨רֶת֙ עַל־הַכָּבֵ֔ד עַל־הַכְּלָיֹ֖ת יְסִירֶֽנָּה׃
숫소의 경우와 차이가 있는 것은 “미골에서 벤 기름진
꼬리”가 소에게는 없고 양에게는 있다. “기름진 꼬리”(하알야 הָאַלְיָ֣ה, 기본형은 알야)가
양과 관련하여 특정하게 언급되는데, 이스라엘 지역에서 기르는 넓은 꼬리를 가진 양의 특별한 특징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양은 15파운드가 넘는 무게의 꼬리를 가졌는데
이러한 꼬리 기름을 제단에 바쳐 먹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알야는 탄원하다, 저주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굳어진 부분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는 사람들의 옛사람의 속성을 나타낸다. 옛사람(첫사람 아담)은 반드시 죽어야만 마지막 사람 아담이 살리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콩팥은 체내 불순물을 제거한다. 마찬가지로 콩팥의 영적 기능은 죄의 문제와 관련된다. 죽지 않으면 죄가 사해지지 않는다. 옛사람이 죽어야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콩팥의 기능으로 불순물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콩팥을 하나님께 불태워 드림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해서 죄 사함에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날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죄를 짓는지 판단해보고 예수님의 피로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여전히 자신의 콩팥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11.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음식이니라
וְהִקְטִירֹ֥ו הַכֹּהֵ֖ן הַמִּזְבֵּ֑חָה לֶ֥חֶם אִשֶּׁ֖ה לַיהוָֽה׃
פ
레위기 3장 5절에서는『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의 번제물 위에서 사를지니』3장 5절과 3장 11절의 차이는 제단 위와 제단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의 번제물이다. 일반적으로
제단의 불위에라는 말은 제단 위에 나무를 놓고 불을 피워서 그 위에 제물을 태우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그래서
불은 나무 위로 타오른다. 그런데, 여기는 불 위의 나무로
되어 있다.
흠없는 제물,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불 위의 나무도 십자가를 십자가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아들을 제물이 되게 하신 것과 같은 심정이다. 죄인으로 하여금 그런 마음의 고통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 마음의 고통은 죄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또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 아들의 죽음이지만, 그와
연합되는 자는 또한 그 죄인이 심판을 받은 것으로 보시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이 불에 타 죽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 심판인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1-12절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성령세례는 성령의 불로 심판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9-50절에서『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불세례와
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된 자는 자신도 불에 태워져 죽는 것이다. 자신이 불에 태워져 죽었음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성령으로 부활시켜 새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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