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12-17절

 3 12-17

 

12-13. 만일 그의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것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וְאִ֥ם עֵ֖ז קָרְבָּנֹ֑ו וְהִקְרִיבֹ֖ו לִפְנֵ֥י יְהוָֽה׃

וְסָמַ֤ךְ אֶת־יָדֹו֙ עַל־רֹאשֹׁ֔ו וְשָׁחַ֣ט אֹתֹ֔ו לִפְנֵ֖י אֹ֣הֶל מֹועֵ֑ד וְ֠זָרְקוּ בְּנֵ֨י אַהֲרֹ֧ן אֶת־דָּמֹ֛ו עַל־הַמִּזְבֵּ֖חַ סָבִֽיב׃

화목제로 드릴 때, 소나 양은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없는 것으로 하지만, 313절에서 염소의 경우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그러나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화목제를 드리고자 하는 자는 암수에 관계없이 흠 없는 가축(소나 양이나 염소)을 여호와 앞으로, 즉 회막 문 앞으로 가지고 왔다. 제사를 드리는 자는 제물의 머리에 안수했다. 안수가 자신을 제물과 동일시하는 상징적 행위라는 점이다. 

화목제 의식은 안수 한 후에 동물을 잡았다. 제사장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리고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토막 내는데, 이것은 레위기 3장에서 나타나지 않지만 번제로 유추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번제와 동일하게 화목제 의식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화목제가 번제와 다른 점은 번제가 동물 전체를 제단 위에서 태운 것과는 달리, 화목제는 내장을 덮고 있는 기름과 콩팥을 덥고 있는 기름, 그리고 간 주위에 있는 기름만을(양으로 드릴 경우 꼬리의 기름까지)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로 태웠다는 점이다. 화목제 의식은 제사를 드리는 자와 함께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또는 가족들이 그 나머지 고기를 먹는 성스러운 식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래서 신약의 성만찬과 가장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 화목제와 가장 가까운 제도는 성만찬이다. 고린도전서 1125절에서 주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 잔을 가리키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 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24 8절에 나타나는 옛 언약의 피를 상기시킨다. 출애굽기 24장에서 백성들이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향속하자 모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기둥을 세우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언약서를 백성들에게 낭독하자 백성들은 다시 한 번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약속했다(7). 그러자 모세는 화목제의 피를 양푼에 담아 반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단에 뿌리고(6), 나머지 반은 백성들에게 뿌리며,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8)라고 선언했다. 

예수께서 제사들과 함께 먹고 마신 최후의 만찬은 이런 면에서 화목제와 유사하다. 성만찬과 화목제의 유사점은 각 식사에 참여하는 자가 정결해야 했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예배자들이 제물을 먹기 위해 정결해야 했던 것처럼 신약에서도 자기 몸을 살피지 않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다.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의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요”(7:20),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11:27)

화목제는 원수나 병의 공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드렸고(20:26; 21:4; 삼하24:25) 혹은 환난에서 구원 받은 후에 하나님의 자비에 초점을 맞추어 감사제를 드렸다(56:12-13). 또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서원제의 약속을 했다. 따라서 서원이 이루어졌을 경우 서원자는 화목제를 드려야 했다. 에서를 피해 집에서 도망 다니던 야곱이 만일 하나님이 자신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가 자신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벧엘에서 서원하고(28:20-22), 돌기둥 위에 기름을 부음으로 자신의 서원을 확실하게 보증했다. 그 후 야곱은 벧엘로 다시 돌아오자 제사를 드렸다(35). 삼상 1장에서 한나는 만일 하나님이 아들을 낳게 해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했다(삼상1:11). 사무엘이 태어나고 젖을 뗀 후 한나는 세 마리의 수소와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로 서원제를 드렸다(삼상1:24)

화목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누리는 거룩한 교제를 드러내는 제사였다. 그래서 화목제는 혼인잔치와 같은 모습이였다.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의 식탁, 즉 제단에서 하나님을 신랑으로, 예배드린 자를 신부로 삼아 먹고 나누는 기쁨의 잔치였다. 화목제는 서로 나눠주는 예물이다( 13:16).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 나누고 확인하는 제사가 바로 화목제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예수의 피 덕분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10:19)라고 말씀하고 있다.

 

14-15.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וְהִקְרִ֤יב מִמֶּ֨נּוּ֙ קָרְבָּנֹ֔ו אִשֶּׁ֖ה לַֽיהוָ֑ה אֶת־הַחֵ֨לֶב֙ הַֽמְכַסֶּ֣ה אֶת־הַקֶּ֔רֶב וְאֵת֙ כָּל־הַחֵ֔לֶב אֲשֶׁ֖ר עַל־הַקֶּֽרֶב׃

וְאֵת֙ שְׁתֵּ֣י הַכְּלָיֹ֔ת וְאֶת־הַחֵ֨לֶב֙ אֲשֶׁ֣ר עֲלֵהֶ֔ן אֲשֶׁ֖ר עַל־הַכְּסָלִ֑ים וְאֶת־הַיֹּתֶ֨רֶת֙ עַל־הַכָּבֵ֔ד עַל־הַכְּלָיֹ֖ת יְסִירֶֽנָּה׃

내장에 붙은 기름과 콩팥을 하나님께 화제로 드렸다. 불살라라는 것이다. 불타는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살고기에 붙어있는 기름은 식용으로 허용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화목제물로 하나가 된 자에게는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신다. 콩팥은 죄의 문제와 관련된다. 이 콩팥을 하나님께 불태워 드림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해서 죄 사함에 나아가는 것이다.

 

16.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וְהִקְטִירָ֥ם הַכֹּהֵ֖ן הַמִּזְבֵּ֑חָה לֶ֤חֶם אִשֶּׁה֙ לְרֵ֣יחַ נִיחֹ֔חַ כָּל־חֵ֖לֶב לַיהוָֽה׃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은 바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형제를 사랑한다』는 의미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이다.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온 영들을 구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는 향기가 되는 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은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는 의미 이전에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신 것이다.

 

17.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חֻקַּ֤ת עֹולָם֙ לְדֹרֹ֣תֵיכֶ֔ם בְּכֹ֖ל מֹֽושְׁבֹתֵיכֶ֑ם כָּל־חֵ֥לֶב וְכָל־דָּ֖ם לֹ֥א תֹאכֵֽלוּ׃ פ

 

창세기 94-5절에서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곧 너희의 생명  찾으리니 라고 말을 하므로서 마치 피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피를 흘리는 장면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므로서 피흘림이 나타난다. 원인은 잘못된 제사(예배)때문이었다. 예배는 영(성령)과 진리(그리스도)로 예배한다. 잘못된 예배는 피를 흘리는 예배가 된다. 오늘날도 대부분  교회는 성령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예배가 되어야 하는데, 예수의 보혈만 요구하는 예배가 계속 진행되는 것이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와 함께 죽어야 하는데, 자기는 빠지고 예수의 피만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십계명에서 말하는 살인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복음이다. 그런데, 율법주의로 빠지면 글자 조문에 얽매여 무거운 짐을 지는 자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으며, 심지어 그들은 메시야를 십자가에 죽여버렸다. 율법주의는 살인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율법주의는 만연하다. 날마다 십계명의 조문을 살펴보고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 한다. 죄를 지을 경우 예수의 피로 용서받으려 하는 것이다. 먹을 것을 육신적(바사르:헬라어 사륵스)으로 먹으면 피를 흘리게 된다는 것이다. 육신적으로 먹지 말고 영적으로 먹으라는 것이다. 제사를 제의적으로 드리면 살육이 된다는 말이다. 잘못된 피흘림이 된다. 그러나 영적으로 피를 마시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창세기 95절에서, 찾을 것이다(에드라쉬אֶדְרֹ֔שׁ:기본형은 다라쉬1875) "다라쉬"는 구속과 구원의 개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피의 보복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구속의 의미를 갖는다. 

에스겔 34 7-10절에서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 떼가 노략 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떼를 그들의 에서 찾으리니(다라쉬) 목자들이 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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