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4-16절

 14-16.『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과 기름을 모든 유향과 함께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וְאִם־תַּקְרִ֛יב מִנְחַ֥ת בִּכּוּרִ֖ים לַיהוָ֑ה אָבִ֞יב קָל֤וּי בָּאֵשׁ֙ גֶּ֣רֶשׂ כַּרְמֶ֔ל תַּקְרִ֕יב אֵ֖ת מִנְחַ֥ת בִּכּוּרֶֽיךָ׃

וְנָתַתָּ֤ עָלֶ֨יהָ֙ שֶׁ֔מֶן וְשַׂמְתָּ֥ עָלֶ֖יהָ לְבֹנָ֑ה מִנְחָ֖ה הִֽוא׃

וְהִקְטִ֨יר הַכֹּהֵ֜ן אֶת־אַזְכָּרָתָ֗הּ מִגִּרְשָׂהּ֙ וּמִשַּׁמְנָ֔הּ עַ֖ל כָּל־לְבֹנָתָ֑הּ אִשֶּׁ֖ה לַיהוָֽה׃ פ

웨임(만일) 타크립(네가 제물을 드리다) 민하트(소제물) 비쿠림(이삭) 야훼 아빕() 카루이(굽다) 바에쉬(불로) 게레쉬(곡물을 찧다) 카르멜(모든 이삭으로부터) 타크리브(제물을 드리다) 에트(격조사) 민하트(소제물) 비쿠레카(이삭들)

웨나타타(넣을 것이다) 알레하(그 위에) 쉐멘(기름) 웨샴타(놓다) 알레하(그 위에) 레보나(유향) 민하(소제물) (그것)

웨힉티르(태울 것이라) 하코헨(제사장) 에트(격조사) 아즈카라타(기념물) 믹기라쉬(찧은 곡식) 우미샴나(그것의 기름) (와 함께) (모든) 라보나타(유향) 이쉐(화제물) 야훼 프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첫 이삭은 그 해의 모든 땅의 산물을 대표한다. 첫이삭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소산에 대한 축복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땅 주인이신 하나님께 소작인과 같은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이다. 이는 십일조와 같은 개념이다.

예수님이 십일조는 율법에 근거한다고 하셨다. 따라서 십일조는 율법에 따라 행한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레위기 25 23절에서 찾을 수 있다.『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 대하여 나그네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그네, 우거하는 자(외국인)이므로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십일조(소작료)로 드려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 나그네로 있으므로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레위기 25 42절에서『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레위기 25 55절에서는『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했다. 하나님의 땅에 종(품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땅을 경작하는 자들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이 어떻게 증거했는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11 13-14절에서 보면『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본향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 하나님의 나라인가? 하나님으로 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십일조를 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본향이라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바로 씨(그리스도)의 약속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통해서 씨의 약속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씨의 약속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다 이루셨다. 십일조를 내는 것은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 이루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바로 십일조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십일조를 여전히 말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마태복음 2323절의 말씀은 예수님이 너희(유대인)가 이렇게(십일조를 드리는 것) 했었어야 한다는 취지로 헬라어 과거 용법으로 사용된 것이므로, 오늘날에 현재시제로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마태복음 2323절에서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τατα [δ] δει ποισαι κκενα μ φιναι. 이 부분을 정확히 번역하면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았어야 했느니라. 라고 해야할 것이다.

또한 유향을 기름 섞은 소제와 더불어 제사장에게 준다. 제사장은 볶아 찧을 기름섞인 소제와 유향의 일부를 취해서 단에 기념물로 불사르는 것이다. 유향이 섞인 소제물은 하나님 앞에 향기롭게 된 것을 의미한다. 화제는 불에 태워드리는 제사이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소제인 고운 가루로 옛것이 죽으면, 성령으로 하늘로 부터 태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다. 유향은 향기로운 기도를 나타낸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소제가 비록 피를 드리지 않고 곡물로 제사를 드리지만 번제 혹은 화목제와 함께 드려졌기 때문에 피와 함께 드려진 것과 같다. 이것은 히브리서 922절에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의 제사의 원리이다.

제물은 다 불태워졌다.『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옛사람과 자기 스스로 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것을 태워버리라고 하신다. 즉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1624-25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자기 부인에서 자기는 목숨(:푸쉬케)을 의미한다. 개역개정에서 푸쉬케를 영, 영혼, 목숨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으나, 혼이다. 혼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옷과 같은 것이다. 이 더렵혀진 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으라는 말이다. 로마서 1314절에서『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옛사람인 혼은 육신의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옷과 같은 것이다.

제물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불세례와 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된 자는 자신도 성령의 불에 태워져 죽는 것이다. 자신이 불에 태워져 죽었음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또한 성령으로 부활시켜 새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좋아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보기에『저 사람들, 술 취했구만』라고 했다. 술 취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령세례를 받아서『새 술에 취했다』고 말한다. 새 술은 바로 부활이며『천국이 임한다』는 말이다. 천국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마태는 하나님 나라를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고 있다. 천국이라는 표현은 이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곧 성도의 심령 속에서 성전이 되는 것이다. 이게 사도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인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