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4-17절

 1 14-17

וְאִ֧ם מִן־הָעֹ֛וף עֹלָ֥ה קָרְבָּנֹ֖ו לַֽיהוָ֑ה וְהִקְרִ֣יב מִן־הַתֹּרִ֗ים אֹ֛ו מִן־בְּנֵ֥י הַיֹּונָ֖ה אֶת־קָרְבָּנֹֽו׃

וְהִקְרִיבֹ֤ו הַכֹּהֵן֙ אֶל־הַמִּזְבֵּ֔חַ וּמָלַק֙ אֶת־רֹאשֹׁ֔ו וְהִקְטִ֖יר הַמִּזְבֵּ֑חָה וְנִמְצָ֣ה דָמֹ֔ו עַ֖ל קִ֥יר הַמִּזְבֵּֽחַ׃

וְהֵסִ֥יר אֶת־מֻרְאָתֹ֖ו בְּנֹצָתָ֑הּ וְהִשְׁלִ֨יךְ אֹתָ֜הּ אֵ֤צֶל הַמִּזְבֵּ֨חַ֙ קֵ֔דְמָה אֶל־מְקֹ֖ום הַדָּֽשֶׁן׃

וְשִׁסַּ֨ע אֹתֹ֣ו בִכְנָפָיו֮ לֹ֣א יַבְדִּיל֒ וְהִקְטִ֨יר אֹתֹ֤ו הַכֹּהֵן֙ הַמִּזְבֵּ֔חָה עַל־הָעֵצִ֖ים אֲשֶׁ֣ר עַל־הָאֵ֑שׁ עֹלָ֣ה ה֗וּא אִשֵּׁ֛ה רֵ֥יחַ נִיחֹ֖חַ לַיהוָֽה׃ ס

웨임(만일) (~) 하오프(새들) 오라(번제를 드리다) 콜라바노(그의 제물) 야훼 웨히크립(드리다) (~) 하토림(산비둘기) 오우(또는) (~) 브네(아들들) 하요나(비둘기) 에트(격조사) 카르바노(그의 제물)

웨히크리보(드릴 것이다) 하코헨(제사장) (에게) 함미즈베아(제단) 우마락(비틀다) 에트(격조사) 웨님사(끊어내다) 다모() () 키르(옆에)함미즈베아(제단)

웨헤시르(제거하다) 에트(격조사) 무라토(모이) 브노사타(깃털) 웨히스릭(던지다) 오타(그것) 에첼(옆에) 함미즈베아(제단) 케드마(동쪽으로) 마콤(장소) 하다쉔()

웨쉬사(쪼갸다) 오토(그것) 빅나파오(날개) (부정) 얍딜(완전히) 웨힉티르(태우게 될 것이다) 오토(그것) 하코헨(제사장) 함미즈베아(제단 위에) (위에) 하에침(나무) 아세르(관계사) (위에) 하에쉬() 오라(재물을 태우다) (그것) 이쉐흐(불로) 레아흐(냄새) 니호아흐(향기로운) 야훼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 끊고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피는 제단 곁에 흘릴 것이며 그것의 모이주머니와 그 더러운 것은 제거하여 제단 동쪽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개역개정)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제물을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 끊고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피는 제단 곁에 흘릴 것이며 그것의 모이주머니와 그 더러운 것은 제거하여 제단 동쪽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수정안)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비둘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즉 비둘기를 번제로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이다. 새끼는 십자가 앞에서 연약한 모습으로 죽는 모습이다.

새는 히브리어로 호프(וְעֹוף֙)이다. 새는 땅 위에도 있고, 하늘의 궁창(공중)에도 있다.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알 하아레츠 알 프네(파님) 러키아 핫사마임(עַל־הָאָ֔רֶץ עַל־פְּנֵ֖י רְקִ֥יעַ הַשָּׁמָֽיִם׃) 땅위 하늘의 공중 위에 얼굴 위에 라는 말이다. 파님은 얼굴로 번역되나 파나(나타내다 라는 의미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하나님의 형상(그리스도)을 나타낸다. 샤마임(하늘)은 성막으로 비유하자면 성소에 해당되는데, 성소 위의 새들이라는 말이다. 즉 성소에서 세레츠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세레츠가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꿈틀거리는 기어다니는 존재가 된다. 레위기 1141절에서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길 짐승은 가증한 즉 먹지 못할지니라고 말하고 있다. 땅에 기어다닌다는 의미는 땅과 하나되는 존재라는 영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늘의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영적으로 타락한 새들은 세상에 있는 맹금류 처럼, 주검(소마)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거짓 선지자)이 모이는 것이다(누가복음 1737). 소마는 하늘의 생명이 없는 몸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새는 성막과 천사를 의미한다. 타락한 영적으로 죽은 새는 타락한 천사들인 것이다. 그들은 속이는 자가 된다. 예레미야 527절에서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번창하고 거부가 되고

새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들인데, 성소에서, 또는 성소의 뜰에서 먹고 사는 것이다. 지성소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들이 있다. 성소 뜰은 죄를 지은 천사들로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에 던져진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들은 땅에서 둥지를 틀지만 결국 공중으로 날아가 사는 존재들이라는 말이다. 천사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존재해야 하는 자들인 것이다. 새를 번제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이 세상에 인간으로 왔는데, 너희들은 원래 천사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으로 눈멀고 가난한 자들이 된다. 비둘기는 제물로 사용되었는데, 가난한 자가 이를 사용하셨다. 누가복음 224절에서『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예수님은 비둘기에 대해서, 마태복음 1016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순결하다 라는 헬라어는 아케라이오이(κραιοι)이다. 는 부정을 의미한다. 케라오이(기본형은 케라이오스 2767번에서 유래)는 순진한, 단순한, 죄없는 의미다. 2767은 섞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아가 있으므로 섞이지 않다 라는 말이다. 히브리어 요나(비둘기)와 같은 의미다. 섞이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둘기는 섞이지 않은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받는 장면에서 비둘기가 등장한다. 요한복음 132절에서『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노아의 홍수는 세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라고 베드로전서 318절에서 말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린 것은 방주에서 비둘기가 나가는 것과 같은 장면인 것이다.

비둘기는 히브리어로 요나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1239-40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속에 있으리라』예수님은 요나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연결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에서는 비둘기(요나)는 전령사로 역할을 한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에 회개를 외치고 복음을 전하는 전령사였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삼일간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을 경험한 것이다. 삼일은 죽음을 상징한다. 누가복음 1331-34절에서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구원은 삼일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삼일길은 십자가의 길이기도 하다. 자기 부인의 길이기도 하다.

첫사람 아담(옛사람)은 마지막 아담과 함께 장사되는 것이 삼일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하는 새사람(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으로 살아가는 것이 구원인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옛사람이 죽고, 성령으로 성전이 세워지면 셋째 하늘인 새하늘이 임재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3 22절에서『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전령사인 비둘기(성령)가 전한 메시지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였다. 마태복음 316-17절에서『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여기는 하늘이 열린 것을 알 수 있다. 성령이 임하려면 하늘이 갈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하늘이 갈라진다는 말은 하늘이 닫혀있다는 전제가 된다.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열리지 않았다는 말이며, 심령 속에 성전의 휘장이 갈라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하늘이 갈라지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이 강제로 찟어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하신다.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 끊고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피는 제단 곁에 흘릴 것이며 그것의 모이주머니와 그 더러운 것은 제거하여 제단 동쪽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머리는 생각의 주체이다. 자기라는 생각의 주체를 버리라는 것이다.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상징한다. 모이주머니와 그 더러운 것은 세상을 상징한다. 세상 속에서 얻는 먹이라는 말이다. 이는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썩어질 것들이다. 그래서 제단이 아니라, 동쪽 재를 버리는 곳(음부:하데스)에 버려 태워버리라고 한다. 성도의 옛사람은 마치 모래 주머니에 저장된 부패한 먹이와 쓰레기에 던져질 더러운 것(내장들) 같은 것이다. 내장은 가장 먼저 부패하는 더러운 것이다. 이는 인간 내면의 탐심이라는 우상과도 같다.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면 하나님이 옛사람을 찢어버리신다. 마치 돌 성전이 무너지게 하듯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찟지 않는 것은 계속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심령 속의 프로슈케 기도를 받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날마다 옛사람이 살아나서 성도를 괴롭힌다. 계속 영적 전쟁을 한다는 말이다. 이슬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지만 계속 전투는 지속되었다.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이다. 그래서 죄인은 불에 타 죽은 자(화제)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죄인은 소돔 성에서와 같이 불에 타죽은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이다.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온 영들을 구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는 향기가 되는 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은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구하는 일이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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